이번 주에 닌텐도가 새로운 스위치를 내놓았다. 2019년에 16nm 공정으로 개선된 테그라 X1+를 탑재한 일명 “공정개선판”과 휴대 특화 라인업인 스위치 라이트 이후 2년 만에 나오는 새로운 하드웨어다. 이미 새로운 하드웨어에 대한 루머는 작년부터 돌고 있었고, 올해 E3을 전후해 발표한다는 루머가 돌면서 기대를 한껏 높였지만 E3에서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이제야 발표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뚜껑이 열리자,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 이유는 이따가 얘기해보고자 하겠지만, 이 발표와 여러 유튜브 영상, 특히 Dave2D의 영상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써본다. (그리고 하도 글을 안 쓴 지가 오래돼서 감각도 다시 살릴 겸)
정말 닌텐도가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걸까?
(닌텐도가 표기하는 공식 명칭은 “닌텐도 스위치 (OLED 버전)”이지만, 그냥 편의를 위해 OLED 스위치라 하겠다.)
OLED 스위치의 개선점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OLED 스위치의 개선점을 나열해보자.
- 7인치 OLED 디스플레이: 가장 큰 개선점이라 할 수 있다. 기존 스위치의 IPS 패널에서 바뀐 것과 더불어, 크기도 커졌다. (6.2인치 → 7인치) 제품의 가로세로는 거의 같기 때문에 (가로로 3mm 정도 늘어났다) 베젤의 두께를 줄인 효과 또한 있다. 다만 해상도는 720p로 똑같고, 최근 OLED 기술을 감안하면 펜타일 배열일 가능성이 높아서 우려스러운 부분은 있다.
- 새로운 킥스탠드: 기존 스위치의 킥스탠드는 조금만 힘을 줘도 떨어져 나갈 정도로 빈약했다. OLED 스위치의 새로운 킥스탠드는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 프로 제품군처럼 제품의 너비 전체를 활용하며, 단 한 개의 각도가 아닌 사실상 무한의 각도를 설정할 수 있다.
- 내장 용량 증설: 원래 스위치와 스위치 라이트는 32GB의 내장 용량을 갖고 있다. OLED 스위치는 이 용량을 64GB로 늘렸다.
- 스피커: 개선했다고 하는데, 직접 들어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 독 개선: 독에서 내부 USB 포트를 하나 뺀 대신, 거기에 이더넷 포트가 들어갔다. 다만 독은 기존 스위치와도 호환되므로 OLED 스위치의 개선된 점이라 보긴 어렵다.
보면 대부분 외관의 개선점이 많이 보이며, 내부 하드웨어의 변화라고는 내장 플래시의 용량 증설 정도가 다다. (물론 중요한 변화긴 하지만) 여전히 프로세서로 2019년에 출시한 테그라 X1+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성능 자체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한 것이다. 나도 그랬고.
스위치 성능의 문제
닌텐도 스위치에 들어가는 엔비디아의 테그라 X1은 2015년 2분기에 생산을 시작한 프로세서로, 당시 엔비디아 실드 TV나 구글의 픽셀 C 태블릿 등에 들어갔다. 스위치는 2017년 3월에 출시했으니, 이미 스위치의 출시 시점에서 봐도 나온 지 2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상태였다.
이때 닌텐도의 결정은 이해할 만하다. 소비자가인 $299(한국 출시 가격 36만 원)에 맞추려면 최신 공정의 ARM 기반 프로세서를 쓰긴 어려웠을 것이고, 하드웨어 공급을 맞추는 능력이 부족한 닌텐도 입장에서는 나온 지 시간이 지나서 수급이 안정적인 부품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위치는 출시 초기, 그리고 당장 2020년에도 꽤 오랜 시간 동안 품귀 현상을 겪어야 했는데, 여기에 더 최신 공정의 프로세서를 사용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뻔하다.
대신 성능은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다. 당시 엑스박스나 플레이스테이션 쪽은 4K 출력이 가능한 일명 8.5세대 콘솔(이후 엑스박스 원 X와 PS4 프로로 출시된다)의 개발이 한창이었고, 당시에 이미 판매하고 있는 일반형 엑원이나 PS4에 비해서도 성능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출시 당시에는 이 “문제”가 용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스위치는 휴대용으로도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휴대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스위치의 스펙은 7세대 콘솔인 엑스박스 360이나 PS3를 압도할 정도로 독보적이었고, 약간의 고생(?)만 한다면 당시 세대의 AAA급 게임을 이식할 수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둠” 리부트나 그 속편인 “둠 이터널”, “울펜스타인” 시리즈, 그리고 “더 위쳐 3” 등이 그런 게임들이었다. (물론 엑원이나 PS4 수준의 그래픽은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그리고 거치형과 휴대형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는 하이브리드형의 특성 덕분에 8세대 콘솔의 주요 트렌드 중 하나였던 옛날 게임의 리마스터 및 포팅의 대유행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퍼스트 파티 출시작인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조차도 특정 상황에서는 타깃 해상도보다 낮은 해상도로 출력함에도, (독 모드는 최대 1080p로 출력이 가능하지만,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성능 최적화를 위해 900p로 출력했다) 20fps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 등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게다가 2020년에는 엑스박스 시리즈 X와 PS5를 위시로 한 9세대 콘솔의 시대가 열리면서 경쟁 진영과 스위치의 성능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성능 격차는 9세대 콘솔을 중심으로 개발하는 써드파티 AAA 게임 개발사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입장에서는 스위치로 게임을 옮기는 데 있어 자원 등의 면에서 난이도를 높이게 되고,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면 옮기는 것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런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이 엑박이나 플스가 그랬던 것처럼 .5세대 개선판이 나와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루머의 4K 출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1080p에서 30fps의 안정적인 성능이 나올 수 있을 정도라도.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10월에 출시되는 OLED 스위치는 4년 반 전에 출시한 첫 스위치와 같은 수준의 성능을 지닌 채로 출시한다. (물론 중간에 공정 개선이 있긴 했지만, 닌텐도는 이 공정 개선을 성능 개선보다는 배터리 효율 개선에 활용했고, 공식적으로도 성능이 같다고 못을 박았다)
문제는 수요와 공급
그렇다면 왜 닌텐도는 이런 선택을 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보통 콘솔의 미드 사이클 업데이트는 기존 모델의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을 때 해당 콘솔에 대한 관심을 재점화시키기 위해 이뤄진다. 2017년에 발매된 엑원 X나 PS4 프로가 대표적이다. 성능 개선을 통해 게이머들의 관심을 샀고, 이를 통해 수요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닌텐도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2020년에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이 집에 머물게 되면서, 스위치에 대한 수요가 말 그대로 “폭발”했다. 거기에는 마침 3월에 출시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출시도 한몫했다. 결국, 스위치의 2020년 판매량은 2019년보다 34%나 늘어났다. 상술한 엄청난 공급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말이다.
여기서 닌텐도가 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능 개선을 위한 새로운 프로세서를 넣는 것은 도리어 모멘텀을 유지하는 데 있어 리스크로 다가올 수도 있다. 새로운 프로세서는 새로운 공정을 요구할 테고, 이 공정이 최적화되기까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공급량이 후달릴 수 있다. (작년에 스위치가 공급 부족에 시달린 것도 2019년에 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테그라 X1+의 수율이 급작스럽게 폭증한 수요를 못 따라갔을 가능성이 크다) 거기에 올해 초부터 일어나고 있는 칩 부족 사태가 이 공급의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스위치가 많이 팔리기는 하지만, 다른 거대 IT 기업들, 특히 세계 최강의 현금 보유고를 자랑하며 연간 2~3억 개의 프로세서를 주문하는 애플 같은 곳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애플 실리콘과 테그라 모두 TSMC가 생산한다) 즉, 새 스위치에 대한 예상되는 수요에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면이 작용해 닌텐도는 결국 기존의 X1+를 그대로 쓰는 방향을 택해 수요를 못 따라갈 리스크를 줄이고, 거기에 그나마 새로운 프로세서보다는 구하기 쉬우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새로운 하드웨어 요소인 OLED를 조합해 지금의 OLED 스위치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럼 “스위치 프로”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일까?
이제 “다음 스위치는 4K 출력을 지원할 것이다”라는 루머의 진위성에 대해 얘기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리가 없었다고 본다. 즉, 닌텐도가 OLED 스위치에 성능이 더 좋은 프로세서를 넣으려고 했었던 것 자체는 사실이었을 것 같다.
OLED 스위치가 발표된 지금의 라인업이 가장 큰 증거다. 미국 달러 기준으로 스위치 라이트와 (놀랍게도 단종되지 않은) 기존 스위치, 그리고 OLED 스위치는 100달러와 50달러의 가격 차이를 두고 있다. 100달러 차이인 스위치 라이트와 일반 스위치는 각자의 위치가 확실하다. 휴대를 강조하기 위해 TV 출력 기능과 조이콘 분리 기능을 삭제하고, 화면 크기도 줄인 라이트와 하이브리드형이라는 폼 팩터를 강조하고, 여기에 배터리 용량도 늘리고 HD 진동도 탑재한 일반 스위치. 하지만, 일반 스위치와 OLED 스위치를 비교해보면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애매하다. 심지어 50달러라는 가격 차이도 애매하다. 원래는 100달러 차이를 두려다 그랬다간 욕을 무지하게 얻어먹을 거 같으니까 50달러로 정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OLED 스위치가 더 강력한 프로세서를 장착했다면, 100달러의 가격 차이에 대한 당위성을 가졌을 것이고, 일반 스위치와 비교해 모든 면에서 상위 호환 모델이라는 포지셔닝이 정착된다. 그렇게 됐다면 199/299/399달러라는 가격 브래킷에 맞춰 각자의 위치가 확실한 라인업이 완성됐을 것이다. (실제로 상술한 루머에서도 399달러를 예상했다) 하지만, 상술한 여러 이유로 인해 새로운 프로세서 장착이 무산되고 그냥 테그라 X1+를 그대로 사용한 지금의 OLED 스위치가 나오게 되면서 라인업이 꼬여버린 것이다.
여기서 반대로, 만약에 OLED 스위치가 지금의 모습을 개발 초기부터 목표로 삼았다면, 아예 일반 스위치를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가격을 299달러에 맞췄다면 일반 스위치의 후계기로 손색없었을 것이다. 물론 성능이 개선되지 않은 점은 여전히 아쉬웠겠지만, 같은 가격에 OLED를 비롯한 개선점이 들어갔으니 이해는 됐을 것이고. 물론 애초부터 이게 목표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지금의 애매한 라인업이 완성됐다.
아쉬운 건 아쉬운 것
물론 이러한 닌텐도의 일련의 선택이 틀렸다고는 보기 어렵다. 하드웨어 제조 기업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야 하며, OLED 스위치는 결국 칩 부족 사태와 2020년에 폭발한 스위치의 수요 등 복합적인 요인을 봤을 때 닌텐도가 선택한 최선책이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위에 써 내린 내 가설이 맞았다면 지금의 OLED 스위치는 뭔가 더 대단한 것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닌텐도는 그 잠재력을 포기한 셈이고. 그 스위치가 어땠을까에 대한 궁금함과 아쉬움은 남는다.
그렇다면 더 강력한 프로세서가 탑재된 스위치는 나오긴 할까? 내 생각엔 언젠가는 나올 것이라고 본다. 물론 닌텐도가 하드웨어 성능에 대해 신경을 안 쓰는 회사라고는 하나 9세대 콘솔과 너무 큰 차이는 둘 수 없을 것이고, 만약에 내 가설대로 실제로 준비했었다면 그 준비했던 것을 그냥 버리기도 아까울 것이니 지금의 칩 부족 사태가 해결되고 시간이 흘러 스위치의 판매량이 감소한다면 위에 얘기한 대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출시를 감행할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본다. 물론 지금 OLED 스위치가 발표된 이상 이 궁극의 스위치는 일러도 2023년에나 나오겠지만.
아직도 2017년에 나온 첫 스위치를 사용하고 있는 나는 OLED 스위치가 발표되기 전에는 100% 갈아탈 생각을 했었지만, 이제는 애매해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코로나19 확진자는 1,300명을 넘었고, 내가 다니는 회사는 다시 우선적으로 재택을 할 것을 권장하여 다시 집콕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OLED를 탑재하고, (공정개선판이 아니니) 배터리 시간이 증가하는 등 휴대용으로 사용했을 때의 이점만 커진 OLED 스위치로 바꾸는 게 잘하는 짓일까? 이런 생각이 계속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