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11 프로가 한국에 막 출시될 당시에 간단하게 가장 중요한 기능인 카메라를 살펴보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러고 리뷰는 언젠가 쓰지 않을까... 란 생각을 했었지만, 그렇게 1년이 지나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새로운 아이폰 12의 발표를 앞둔 이 시점에서, 아이폰 11 프로를 지난 1년간 사용한 후기를 작성해보고자 한다. 폰의 전반적인 부분을 커버한다기 보단, 내가 느낀 점들을 토픽으로 정해 다뤄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아이폰이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좋을지를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당장 내일 새벽에 그 답이 나올 거지만.
무겁다
나는 이제 2년째 맥스 아이폰을 쓰고 있다. 2018년에 6.5인치의 첫 맥스 아이폰인 아이폰 XS 맥스로 갈아타고, 이번 2019년에도 별 거부감 없이 아이폰 11 프로 맥스를 샀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의 크기에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작은 크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큰 편인데, 올해 초에 출시한 아이폰 SE의 크기가 커진 것에 실망감을 많이 표한 것도 거기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사람들의 바람은 5.4인치짜리 아이폰 12로 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신념(?)이 딱히 없는 편이다. 처음으로 큰 라인업이 나온 아이폰 6와 직후속인 6s는 "작은" 4.7인치 모델을 사용했고, 아이폰 7이 나왔을 때는 단순히 망원 렌즈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5.5인치인 플러스로 갈아탔다. 다음 해 아이폰 X이 나왔을 때는 사이즈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시 작은 사이즈로 옮겨왔다.
그러고 다시 2년을 큰 "맥스" 폰으로 살아왔지만, 만약에 이번 아이폰 12 프로와 프로 맥스가 기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면 다시 작은 크기로 돌아갈 거 같다. 이유는 다름 아닌 무게 때문인데, 특히 XS 맥스에서 11 프로 맥스로 오면서 무게가 많이 불어났다. 아이폰에서는 역대급인 15Wh(2.6V 기준 약 3,969mAh)의 배터리가 들어가면서 XS 맥스 대비 20g 가까이 늘어났는데, 전체 무게 대비 10%에 육박한다. 이게 수치상으로는 큰 차이가 아닐 거 같지만, 실제로 사용할 때에는 꽤 큰 차이로 다가왔다. 특히 밤에 폰을 들고 뭘 볼 때는 더더욱. (물론 밤에는 웬만하면 스마트폰을 쓰지 말라고는 하지만... 우리 모두 그러지 않습니까)
물론 이번 12 프로 맥스에서 무게를 뺀다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11 프로 맥스의 배터리를 크게 늘린 것이 호평을 받으면서 이번에도 큰 배터리 용량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무게 문제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만약에 화면이나 배터리 등 크기 차이에서 오는 것들 외의 다른 기능 차이가 없다면 더 작은 12 프로가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최신 루머에 따르면 내 바람은 무참히 무너진 거 같지만 말이다)
성능
성능만을 바라보고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다들 얘기한다. 특히 아이폰을 보면 그렇다. 애플은 현재 iOS 14를 지원하는 가장 오래된 기종인 아이폰 6s를 기준으로 하면 총 네 번의 메이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제공해준다. 즉, 해당 기종의 5년가량을 지원해준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애플은 특정 연도에 출시하는 아이폰들은 가격대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최상급의 프로세서를 넣어준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올해 초 아이폰 SE가 출시됐을 당시에 썼던 글을 참조해보면 된다.
무튼,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무엇이냐? 아이폰 11 프로의 A13 바이오닉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빠릿빠릿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 11 프로를 산다고 해도 다른 곳이 아쉬울지언정 성능에서 아쉬울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어떤 걸 던지던, 모든 게 빠르다.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메모리(RAM)이다. 아이폰 11 프로의 A13 바이오닉에는 RAM이 4GB 들어간다. 사실 아이폰은 전통적으로 RAM이 적어도 iOS의 최적화 덕에 기타 운영체제와 다르게 크게 무리가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아이폰을 쓰면서 메모리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했었으니까.
하지만 아이폰 11 프로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그 원인은 카메라 앱인데, 생각보다 메모리를 엄청 잡아먹는 모양인지 카메라로 뭘 찍었다가 바로 직전에 쓰고 있던 앱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앱이 다시 열린다. 처음으로 아이폰의 메모리가 부족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카메라를 쓰지 않으면서 다른 앱을 쓸 때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물론 A13의 CPU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앱 론칭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서 이를 만회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웹페이지를 다시 로딩하면서 마지막으로 읽었던 부분으로 다시 내려가야 하는 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카메라 앱이 더 메모리를 효율적으로 쓰도록 바꾸거나(이미 iOS 14에서 증상이 많이 나아지긴 했다) 아이폰 12에서 다시 메모리가 더 추가되길 바랄 뿐이다.
카메라 얘기가 나온 김에...
카메라
애플은 아이폰 11 프로에 와서 카메라를 대폭 개선했고, 이 새로운 카메라에 대한 느낌은 한국에 막 출시했을 때 글로 남긴 적이 있다. 지금도 이때 느꼈던 부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다루지 못했던 딥 퓨전과 동영상 촬영에 대해 몇 가지 남기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딥 퓨전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시스템상으로 켜고 끄지 못 하도록 막아두었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신경쓸 필요 없이 모든 것이 "그냥 동작하는" 것. 그게 애플의 방식이니까.
딥 퓨전은 간단히 말해 화소 단계에서 다중 노출로 촬영한 사진을 합성해 세부 디테일을 살리는 소프트웨어 기법이다. 기본적으로는 주광이 아니지만, 나이트 모드가 필요하지 않은 정도의 중-저조도 상황에서 자주 쓰인다.
딥 퓨전이 의외로 효과가 좋았던 부분은 바로 디지털 줌을 할 때였다. 디지털 줌의 원리는 간단히 말해 센서의 가운데 일부분을 자른 다음 그 부분을 기존 센서 해상도로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세부 디테일 저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사진을 촬영할 때 웬만하면 디지털 줌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딥 퓨전의 기반 기술은 이러한 디테일 저하에도 적용된다. 물론 센서의 전체 촬상면을 활용할 때만큼의 디테일은 아니더라도, 예전보다 디지털 줌으로 찍은 사진이 훨씬 유용해졌다. 아래 샘플 사진을 몇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아이폰의 동영상 촬영은 이미 스마트폰 최강자임은 예전부터 증명됐던 부분이다. 이번 아이폰 11 프로에서 크게 개선된 부분은 바로 손떨림 방지 촬영인데, 현재 촬영하고 있는 각도보다 더 광각인 센서의 정보까지 가져와 실시간으로 합성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핸드헬드로 찍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손떨림 보정을 보여준다.
기술의 상향 평준화로 점점 스마트폰 교체 시기가 길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카메라의 기능 개선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는 소비자들이 폰을 업그레이드할 만한 구실을 제공하는 몇 안 되는 부분 중 하나다. 그 말인즉슨, 이번 아이폰 12에서도 카메라 기능의 발전을 기대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아이폰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지난 몇 년 동안 침체기를 보였던 스마트폰 시장은 다시 제조사들이 새로운 폼 팩터를 실험하기 시작하면서 흥미로워지고 있다. 접는 스마트폰, 혹은 가로본능의 귀환 등 다양한 폼 팩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애플은 바로 뛰어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의 발전 방향을 보고 조심히 발전 방향을 계산하는 것이 애플의 방식이다. 5G가 상용화되고 1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5G를 처음으로 적용한 아이폰을 이번에 내놓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은 이제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폰을 업그레이드할 시기가 된 소비자들은 이번 아이폰이 어떻게 나오던 결국은 사게 될 것이다. 애플 블로거로서 궁금한 것은 이렇게 발전이 더디지만, 여전히 매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제품의 발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하지만 애플이 얼마나 매우 잘 발표를 하더라도, 아이폰 12가 매우 좋은 발전을 보였다 하더라도 크게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만약 여러분이 아이폰 11 프로 (혹은 아이폰 11)를 가지고 있다면, 12로 업데이트를 해야 할 필요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여러분의 아이폰은 내년뿐만 아니라, 향후 최소 3년은 문제없이 버틸 거니까. 늘 새롭게 나오고, 모두의 눈길은 최신 제품에 가는 게 현실이지만, 매년 바꿀 필요는 없을 뿐더러, 추천도 하지 않는다.
내가 그 짓을 매년 하고 있어서 안다. 올해도 그럴 거겠지만.
이 글은 필자 쿠도군이 2019년 9월 20일에 직접 구입한 아이폰 11 프로 맥스를 1년 넘게 사용한 후에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