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를 위한 사기템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가 갑자기 한국에 상륙하면서 전국을 휩쓸고 있다. 마치 7개월 전 서비스를 시작했던 미국을 보는 기분이다. 지금 내가 있는 미국은 이미 그 인기가 식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학교 체육관전은 꾸준히 진행되는 듯 아직 완전히 사그라들진 않았다.
그러니 이 녀석을 소개시하기에 매우 적당한 타이밍이다. 바로 "포켓몬 고"를 위한 앱세서리(앱 + 액세서리의 합성어)인 포켓몬 고 플러스다. 마침 "포켓몬 고"의 론칭 시점에 이 녀석을 입수한 것도 어떻게 보면 기막힌 타이밍이다. "포켓몬 고"의 론칭과 함께 발표된 이 기기는 사실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애초에 수요를 매우 낮게 잡고 생산해버린 탓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상황이 아니던가 읍읍) 물론 NES 미니만큼 구하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정가의 3배 프리미엄이 붙곤 했었다.
과연 이 녀석이 뭐길래 그러는 것일까?
포켓몬 고 플러스의 주요 기능은 스마트폰에서 "포켓몬 고"를 계속 켜고 있을 필요 없이 게임의 몇 가지 기능을 돌릴 수 있다는 것에 있다. "포켓몬 고"는 앱을 계속 켠 상태로 돌아다니면서 플레이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스마트폰 배터리에도 치명적이기도 하고, (초기 버전은 하루 만에 10,000mAh짜리 외장 배터리를 완전히 방전시켜버렸었다) 요즘같이 추운 날에는 손에도 치명적이기도 하다. 폰만 보고 다니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겠고. 포켓몬 고 플러스는 "포켓몬 고"의 일부 기능을 옮겨와 스마트폰의 배터리와 여러분의 손, 그리고 목숨까지도 지켜줄 수 있다.
일단 어떻게 생겼는지 보도록 하자. 전체적인 모양은 몬스터볼과 구글 지도의 핀 아이콘을 합친 듯한 모양새다. 가운데에는 버튼이 하나 있고, 뒤에는 옷에 걸 수 있는 걸이가 있다. 나는 테스트할 때 보통 청바지 주머니에 걸고 테스트를 했다. 이 걸이를 통해 닌텐도가 제공하는 밴드를 걸어서 손목에 찰 수 있기도 한데, 차마 그것까지는 못 하겠더라.
배터리는 요즘 트렌드인 내장형 리튬 계열 배터리가 아닌, 예전에 ‘수은전지’라 불렸던 CR2032 배터리를 쓴다. 요즘은 리튬 기반으로 바뀌었다고 하니 여전히 리튬 계열이긴 하다. 걸이 아래에 있는 나사를 풀어서 배터리를 교체해주면 된다. 닌텐도에 따르면 배터리는 100일 정도 간다고 하는데, 얼마나 자주 하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거 같다. (한 테스트에서는 32일 만에 다 닳았다고 하는 곳도 있었다)
연결은 상당히 간단하다. "포켓몬 고" 앱의 설정에 들어가 ‘Pokémon GO Plus’를 탭한 다음, 화면의 안내에 따라 연결을 해주면 된다. 에어팟만큼 간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간단한 편이다. 그리고 특정 시간이 지나면 연결이 끊어지는데, 이 때는 앱에 들어가서 연결 버튼을 다시 탭해주면 된다. 아마 고 플러스의 배터리를 아끼기 위한 조치인 듯하다.
포켓몬 고 플러스가 폰과 연결한 후, 앱을 백그라운드에 살려두기만 하면 폰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플러스에 보낸다. 대표적으로 필드에 등장하는 야생 포켓몬과 포켓스톱이 범위에 들어왔을 때 진동으로 알려준다. 야생 포켓몬의 경우 긴 진동과 함께 버튼이 초록색(이미 도감에 있는 포켓몬)이나 노란색(도감에 없는 포켓몬)으로 빛난다. 포켓몬을 잡으려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마지막에 무지개색으로 빛나면 잡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고, 빨간색이면 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혹자는 앱을 켜지 않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물을 것인데, 물론 몇 가지 제한이 있다. 일단, 포켓몬의 포획 시도는 무조건 몬스터볼로만 할 수 있다. 슈퍼볼이나 울트라볼은 사용할 수 없고, 몬스터볼이 다 떨어지면 다른 볼로 포획을 시도할 수도 없다. 그리고 포켓몬 고 플러스로 포획을 시도할 경우 한 번 볼을 깨고 나오는 순간 포켓몬이 곧바로 도망친다는 것도 참고하면 좋겠다.
하지만 포켓몬 고 플러스가 정말로 사기템이라 불릴 수 있는 건 바로 포켓스톱과 걷기 기능이겠다. 포켓스톱 근처로 가면 파란색으로 빛이 나면서 알려주는데, 이때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바로 아이템을 긁어모을 수 있다. 그 덕분에 평소에는 30개 넘기도 힘들었던 슈퍼볼이 100개 가까이 쌓여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거기에 포켓몬 고 플러스는 몬스터볼밖에 쓸 수 없는 점도 기여를 한다) 하이퍼볼은 획득률이 훨씬 낮긴 하지만 그래도 40개 정도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포켓몬 고 플러스는 앱이 백그라운드에만 있어도 걷는 거리를 측정해줄 수도 있다. 알을 부화시키거나 최근 추가된 파트너 포켓몬 기능에 상당히 유용한데, 고 플러스를 켜놓은 상태로 돌아다니면 5km짜리 알 정도는 단 하루 만에 부화시킬 수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제일 중요한 기능이라고 본다.
포켓몬 고 플러스의 공식 가격은 35달러(약 4만 원). 그렇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건 아마 여러분이 얼마나 "포켓몬 고"를 자주 하느냐에 달려 있을 거라 본다. 만약에 주말마다 포켓몬을 잡겠다고 탐방을 한다던지, 출퇴근이나 외근을 하면서 "포켓몬 고"를 하는 것이 요즘 낙이다라고 한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확실히 하드코어 플레이어들에게는 매력적인 기능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이따금씩 하는 사람들, 특히 게임에 절대로 현질을 하지 않는 분들이라면, 굳이 4만 원이 넘는(국제 배송비를 포함해서) 가격을 지불하고 국제 배송을 시킬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특히 포켓몬 고 플러스의 부작용 중 하나가 몬스터볼이 떨어지는 속도와 포켓몬이나 아이템이 차오르는 속도가 올라가면서 현질을 유도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차라리 포켓몬 고 플러스를 구매하면 어느 정도의 인앱 구매 콘텐츠를 해금시켜주는 것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이템 가방과 포켓몬 박스를 업그레이드해준다던지, 몬스터볼을 얹혀준다던지.
그리고 만약에 애플 워치가 있다면? 전혀 필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