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쿠도캐스트의 공동 호스트인 호로요이님이 기고한 글입니다.)
이북리더. 어찌보면 이 시대를 역행하는 기기라고 할 수 있다. 영상이 주를 이루는 시대에 영상은 커녕 이미지를 표시하는 것도 흑백으로만 가능하다. LTE를 넘어 5G로 나아가는 시대에 Wi-Fi만 가능하고, 그나마도 배터리 수명을 위해 끄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시대적 기기가 팔리는 이유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크기는 매일 들고다니기에 부담스러움이 없고 여러 권의 책을 담을 수 있고, 다른 기기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했을 연결성의 부재가 책 읽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집중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리디 페이퍼는 리디 북스의 최신 이북리더이다. 6인치의 e-ink 디스플레이를 장착하였고, 꽤 오래가는 배터리를 빼고 나면, 딱히 눈에 띄는 스펙은 없다. 다만 19만 원으로 책정되어 이 사양의 이북리더 치고는 상당히 비싸다는 것을 빼고는. 과연 그 비싼 값을 할까?
Ridibooks - Ridi Paper
장점
- 좋은 가독성
- 구독형 서비스 셀렉트
단점
- 기능에 비해 비싼 가격
- 불안정한 소프트웨어
- 용서가 안 되는 속도
- 오래 쓰면 엄지손가락이 저려오는 버튼
- 타사 서재 이용 불가
점수: 6/10
너무 느리다
전작보다 20%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느리다. 이건 반박의 여지가 없다. 아무리 이북리더가 PC의 속도를 넘보는 아이패드처럼 빠를 필요는 없다지만, 이건 확실히 느리다. 초기에 책을 불러오는 데도 조금 시간이 걸리고, 한 권의 책 내에서도 종종 로딩하는 데 수 초의 시간이 소요된다. 종이책을 대체하려는 기기가 이러면 곤란하다. 서점에서 책을 읽을 때 페이지를 넘기면 로딩창이 뜨던가?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종이책을 읽었을 때엔 그런 창이 뜨지 않았다. 물론 그때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가 마치 오래된 컴퓨터가 대작 게임을 로딩하다 뻗은 것처럼 내 뇌가 멈췄던 일은 또렷히 기억난다. 느린 것도 모자라 아예 멈춰버리는 경우도 있다. 충전 후에 장치를 켜면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혼수 상태에 빠져드는 경우가 잦다. 일주일 새 못 해도 세 번은 본 것 같다. 아이폰이나 갤럭시가 이랬으면 포털 메인 뉴스감이다[^1]. 이것도 모자라 패치가 이뤄진 이후에도 종종 작동 중에 멈춰버리는 일이 있었다. 이 문제가 특히 짜증나는 이유는 부팅도 느린데 책을 다시 읽어 오려면 한 세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1]: 해당 버그는 최근 패치로 수정되었다.
오프라인 사전은 어디에?
이북리더는 와이파이에 연결되지 않은 환경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와이파이가 없는 집밖이나, 출퇴근길 등에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거니와 배터리 때문에 와이파이를 애초에 끄고 쓰게 된다. 그러면 문제가 생긴다. 오프라인으로는 쓸 수 있는 사전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단어를 찾고자 하는 경우 무조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그나마도 매우 느리다. 느릿느릿 메뉴를 불러와서 와이파이를 키고 AP를 찾아다가 카페 직원에게 물어서 알아낸 암호를 치는 느릿느릿 치다가 속터지는 것보다는 휴대폰을 꺼내서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정신건강에도 좋다.
있을 건 다 있지만 없을 건 없는 서재
사람마다 좋아하는 책이 다 다르다. 나는 소설이나 에세이, 여행기 등을 좋아하는 편이고, 한국어로된 서적을 읽을 때도 있고 영어로 읽을 때도 많다. 혹은 한 권의 책을 두 언어로 비교해가며 읽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리디북스의 서재는 다소 부족한 면이 많다. 사실상 원서는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책인 ‘Hillbilly Ellegy(번역서: 힐빌리의 노래)’ 같은 베스트셀러 조차 없는 것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서를 자주 읽는 분이라면 고민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반면에 국내서적만을 읽는 분들에게는 생각보다 충실하다. 꽤 많은 책이 전자 포맷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일부 서적은 셀렉트를 통해 월 9,900원에 구독형으로 만나볼 수 있다. 해당 구독 상품은 '아티클'을 포함하는데 이를 통해 여러 기사를 볼 수도 있는다. 안타깝게도 리뷰를 작성 중인 현재 페이퍼에서는 아티클을 볼 수 없다.
책 읽는 경험은 만족
느리고 중간중간에 로딩이 있다는 점만 빼면, 책을 읽는 경험 자체는 매우 우수하다. 6인치 화면은 거대하진 않지만 책을 읽기에는 적당한 크기이고, 소설 한 페이지와 비슷한 사이즈이기도 하다. 또한 리디북스가 이북리더용으로 새로 개발한 글꼴인 리디바탕의 가독성도 상당히 만족스럽다. 기존 기기도 곧 업데이트를 통해 지원할 예정이라고 하니, 리디바탕을 써보고 싶은 기존 기기 사용자라면 기다려볼 만하다. 또한 프론트라이트의 밝기뿐만 아니라 색온도도 사용자 취향에 맞춰 조절할 수도 있는데, 아쉽게도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조절되지 않으며, 아마존의 오아시스나 스마트폰처럼 시간대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되게 하는 옵션도 없다. 또한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 있도록 버튼이 두 개 준비되어 있다. 다만 버튼감이 좀 아쉽다. 두 버튼이 붙어 있어서 책을 읽다가 다른 버튼을 누른 경우도 종종 있었으며, 심지어 오래 책을 보며 버튼을 누르다 보면 손가락이 아프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리디여야만 할 이유는 없다
리디 페이퍼는 리디의 컨텐츠만 이용할 수 있다. 경쟁 기기들과 달리 열린 서재를 통해 타사의 책을 읽을 수 없다. 따라서 리디의 서재 중에 사용자가 원하는 컨텐츠가 없다면 이용할 수 없다. 또한 리디의 서비스 품질에 따라 기기의 가치도 크게 달라진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썩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외서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든 수준이며, 이용하는 중간중간 서비스 장애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리디북스의 매력 중 하나는 합리적인 가격이었는데, 이마저도 내년부터는 도서정가제의 영향으로 혜택이 대폭 축소되거나 없어질 예정이다[^2]. 즉 리디만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가 많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디북스 컨텐츠만을 이용할 수 있는 기기를 쉽사리 구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2]: 도서정가제(이른바 책통법)이 내년부터 전자책에도 적용되어 10%를 초과하는 혜택을 제공할 수 없게 되었다.
종합하자면 리디 페이퍼는 책읽기에 좋은 기기이지만 가격에 비해 아쉬운 점들이 많다. 느리고, 충전 중에 멈추기까지 하며, 있어야 할 법한 기능들이 없기도 하다. 게다가 가격이 이북리더 치고는 싸지도 않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 다소 부족하지만 그럭저럭 쓸 만한 기기로 다가올 것이긴 하지만, 이 가격이라면 이것보다는 훨씬 더 나아야 한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조금만 더 신경써서 만들었더라면, 주저하지 않고 추천할 수 있는 기기였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