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추워지기 시작해지는 가운데 전해드리는 47주차 외신 브리핑입니다.
알렉사의 몰락, 그리고 음성 비서 서비스 전반의 몰락?
지난 외신 브리핑에서 아마존의 인력 감원 소식을 전해드렸었죠. 그 인력 감원 중에서 우리 입장에서는 의외라고 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알렉사입니다.
알렉사는 2014년에 첫 선을 선보인 이후로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쓰는 음성 비서 중 하나로 급부상했었죠. 비록 음성 비서 소프트웨어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애플의 시리였지만, 이를 스마트 스피커라는 하드웨어와 합친 것은 아마존의 알렉사와 에코가 최초였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1세대 에코는 출시 후 첫 2년 동안 5백만 대를 팔아치울 정도였고, 여기에 스마트 홈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기능도 적극적으로 업데이트하기도 했습니다.
알렉사는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가 직접 기획하고 이끈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베조스는 개인적으로 알렉사의 개발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고 하며, 심지어 고객들에게 보내는 이메일 캠페인까지 직접 확인하고 피드백을 보냈을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알렉사의 전반적인 전략에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것은 바로 알렉사를 둘러싼 사업 전략과 실제로 사람들이 알렉사를 활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마존은 알렉사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데서 직접적으로 수익을 내기보다는 사용자들이 알렉사를 사용하면서 연계된 아마존의 서비스를 이용하리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타이머나 음악 재생 등 단순 명령만을 사용했고, 이런 단순 명령은 아마존의 수익 창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아마존이 알렉사의 품질을 개선하는데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공격적 확장을 위해 알렉사로 작동하는 전자레인지 등 온갖 특이한 제품들을 내놓았지만,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재 알렉사는 이용자 수에서 구글 어시스턴트와 시리에 뒤쳐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사람들이 음성 비서를 타이머 등의 단순 용도로 활용한다는 문제는 다른 서비스들도 비슷하게 겪고 있는 일이긴 할 겁니다. (하다못해 저도 시리한테 가장 많이 해달라고 하는 것이 타이머랑 알람, 날씨니까요.) 하지만 구글과 애플은 각각 음성 비서 서비스가 회사 전체의 사업 비중에서 크게 차지 않는 것에 반해, 아마존은 한때 알렉사에 작업하는 직원 수가 10,000명에 달할 정도로 아마존의 전반적 전략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실패가 뼈아플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음성 비서 서비스는 여기서 어디로 갈까요? 솔직히, 여기서 더 발전하려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해 보입니다. 단순히 타이머 시작해달라는 것뿐만이 아닌, 더 복잡한 요청도 척척 해결해줄 수 있는, 더 믿음직한 서비스로 말이죠. 물론, 그러려면, 아직도 타이머를 한 개까지만 지정할 수 있는 등의 어이없는 제한들을 비롯해 다양한 기본기를 개선해야겠죠.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네요.
FTC, 21년 만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재대결?
미국 공정거래위원회(FTC)가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를 준비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반독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폴리티코가 23일(현지 시각) 보도했습니다.
이미 소니가 콜 오브 듀티의 엑스박스 독점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전 외신 브리핑에서도 전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마이크로소프트는 사실상 무기한으로 콜 오브 듀티를 플레이스테이션에 출시할 것임을 약속한 상태임에도 FTC를 비롯해 다양한 국가들의 반독점 당국에서는 우려를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FTC가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콜 오브 듀티뿐만이 아닌, 이후에 아직 출시하지 않은 단독 프랜차이즈나 다른 게임들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점유율을 위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여태까지 세 곳의 콘솔 제조사 중 점유율이 꼴찌인 점을 활용해 독점적 지위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쳐왔습니다. 심지어 영국의 반독점 기관인 경쟁 및 시장 감시국(CMA)에 제출한 자료에는 "소니의 독점 게임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게임보다 리뷰 점수를 더 잘 받는다"라는 주장까지 펼쳤습니다. 즉, 자기네들의 독점 게임은 소니의 것보다 게임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액티비전-블리자드를 인수해야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죠. 결국, 이 인수를 하겠다고 산하 스튜디오들을 까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불구하고 FTC가 실제로 소송을 진행하기로 한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됩니다. 인수는 2023년 7월까지 끝내기로 약속한 상황인데, 소송이 벌어진다면 7월까지 소송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인수가 결렬된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악명 높았던 인터넷 익스플로러 끼워팔기로 인한 반독점 소송 이후 21년 만에 반독점 소송 크리를 맞게 되는 셈입니다.
밥 아이거의 귀환이 의미하는 것은?
지난 20일(현지 시각), 월트 디즈니의 이사회가 급작스럽게 밥 아이거의 CEO 귀환을 발표했습니다. 2020년 2월에 CEO직을 그만둔 후 거의 3년만입니다. 아이거 자신이 후계자로 내세웠던 밥 차펙은 곧바로 경질되었습니다.
디즈니의 이러한 발표는 흔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발표를 일요일 밤에 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겠죠. 다만 확실한 것은, 차펙의 경영 방식에 많은 이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차펙이 실책을 범한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함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콘텐츠 전략과 파크 부문입니다. 차펙이 CEO가 되자마자 코로나19 판데믹이 시작되었고, 차펙은 이 상황을 이용해 기존에 극장 개봉이 예정되어 있었던 다양한 영화들을 디즈니+로 직행시켰습니다. 디즈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차펙 입장에서는 판데믹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니 어떻게든 영화를 공개해서 영화관보다 수익은 적더라도 매출을 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었고, 굳이 차펙을 두둔해주자면 이는 디즈니뿐만 아니라 HBO 맥스를 서비스하는 워너가 선택한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이 전략은 판데믹 때문에 썩히고 있었던 영화들을 어떻게든 공개해서 적게나마 돈을 벌 수 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었을 수 있지만, 영화관보다는 매출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부분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는 영화관 흥행 성적에 따라 추가 출연료를 받는 방식인 러닝 개런티를 받는 출연 배우들에게도 영향이 갔는데, 당연히 디즈니+를 통한 매출은 러닝 개런티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개봉했던 "블랙 위도우"가 영화관 개봉과 디즈니+ 공개를 동시에 진행한 건을 두고 주연 배우인 스칼렛 요한슨이 러닝 개런티 손실을 이유로 디즈니를 고소했다가 이후에 보상금을 받고 합의한 사건은 차펙의 중구난방 전략의 문제점이 표면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죠. (결국 2억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랙 위도우"는 디즈니+를 통한 매출을 제외한 단순 영화관 매출이 3억 8천만 달러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는 못했습니다.) 아이거는 차펙의 이러한 결정과 이로 인해 벌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요한슨과의 법정 공방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당시에 이사회 의장으로 있었던 아이거는 상당히 불편해했다고 합니다.
또한, 판데믹으로 인해 1년 넘게 전세계의 디즈니 파크들의 문을 닫아야 했는데, 이를 메꾸기 위한 시도였는지 전반적으로 입장권 가격을 꾸준히 올린 것도 문제가 됐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료 혜택이나 내부에서 추가로 써야 하는 식비나 굿즈 가격도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같이 인상되어 방문자들의 이마를 찌푸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에도 지난 6월 2024년까지 임기가 연장된 차펙이 결정적으로 급작스럽게 경질된 계기가 된 사건은 지난 실적 발표였습니다. 차펙이 그렇게도 공을 들인 스트리밍 부문에서 무려 14.7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이는 작년 동기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당초에 디즈니는 2024년 9월을 기점으로 스트리밍 부문의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있음도 시사했습니다. 실적 발표 후 디즈니 주가는 13%나 떨어졌고, CFO인 크리스틴 맥카시는 이사회에 차펙에 대한 불신임권을 던졌습니다. 이 이후에 18일에 디즈니의 이사회 의장인 수잔 아놀드가 아이거에게 직접 전화해 다시 CEO를 맡을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고, 이로부터 이틀 뒤에 전격 교체가 발표된 것입니다.
아이거는 디즈니 CEO를 2년 동안만 맡을 예정이며, 그동안 적법한 후계자를 찾아서 인수인계 작업을 병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아이거의 디즈니는 물론 스트리밍 사업의 수익성 개선이라는 단순 수치적인 과제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차펙이 CEO로 있던 기간 동안 콘텐츠의 품질(특히 최근 MCU 영화나 드라마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많이 듣죠)이나 파크의 가격 정책 등 여러 방면에서 깎아먹은 이미지를 살려야 한다는 문제를 안게 됐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이제 다음은 애플과의 맞짱?
지난 몇 주간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가 정신없이 뉴스 폭풍을 내고 다닌 가운데, 새로운 폭풍이 조금씩 생성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21일(현지 시각), 애플의 전 세계 마케팅 수석 부사장이자 현재는 애플 펠로우인 필 쉴러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비활성화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필 쉴러는 지금도 앱 스토어를 손수 이끌고 있는 인물로, 어떻게 보면 애플에서 외부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안 그래도 머스크가 콘텐츠를 관리하는 안전 부서의 직원 대부분을 지난 여러 번의 정리해고를 통해 다 날리는 바람에 그 부분에 심각한 구멍이 생겼다는 외부 관찰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앱 스토어에서는 콘텐츠 관리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앱 심사의 기준 중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극우 성향의 소셜 네트워크인 팔러가 콘텐츠 관리 정책이 없다는 이유로 앱을 스토어에서 내려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물론 단순히 쉴러가 트위터 계정을 비활성화한 것이 다른 이유에서 기인한 우연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현재 머스크는 트위터 블루 구독제로 매출을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죠. 트위터 블루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만 가입이 가능한데요. 만약에 앱 스토어에서 트위터 앱을 내려버린다? 트위터에게는 사형선고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머스크도 그 부분을 우려하고 있기는 한가 봅니다. 26일에 쓴 트윗에서, 그는 선택권이 없어진다면 직접 스마트폰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