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온 외신 브리핑에는 지난 회에 준비하던 내용을 어쩌다 이어갑니다.
영국: "마이크로소프트와 액티비전 블리자드, 난 이 인수 반댈세"
이번 주의 가장 큰일은 아무래도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국의 반독점 조사를 담당하는 CMA(경쟁과 시장 당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690억 달러짜리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불허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당연히 마이크로소프트 쪽은 이 결정에 항소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 항소 결정을 밝히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인 브래드 스미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영국에 진출하고 나서 "지난 40년 중 가장 암울한 날이다"라고 했다는데, 과장도 적당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근데 CMA의 결정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지점이 꽤 있습니다. 이 인수와 관련된 논란은 여태까지 대부분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독점권 문제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소니는 이 인수가 성사되면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독점권이 엑스박스에 넘어간다면서 이는 플레이스테이션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주장을 꾸준히 펼쳐왔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동원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닌텐도에게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10년 동안 출시 보장을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잠깐 이 부분을 빼서 얘기하자면 CMA는 여기에도 딴죽을 걸었는데, 주요 골자는 "닌텐도 스위치의 성능으로는 최신 콜 오브 듀티를 돌릴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팩트의 융단폭격을 멈춰주세요...)
무튼 그랬는데, CMA가 불허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바로 클라우드 게이밍이 있습니다. 이 인수가 성사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게이밍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와 비슷한 얘기를 지난 쿠도캐스트에서도 다룬 적이 있었고, 이와 함께 준비하다가 시간 부족으로 나가지 못한 외신 브리핑에서도 잠깐 다뤘었습니다. 어차피 그 때 못 나간 내용, 여기서 재탕해봅니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속내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클라우드 게이밍입니다. 이미 콘솔 시장에서는 만년 꼴찌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으니 (심지어 이걸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의 이유랍시고 줄기차게 써먹고 있기도 합니다.) 게임 패스로 반전을 노려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베데스다를 비롯한 여러 게임 스튜디오들을 인수했고, 이제 액티비전-블리자드도 인수하려는 것이죠.
이러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큰 그림에서 사실 콘솔 독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집니다. 이미 IT 업계의 고정적 수익 모델은 이미 "구독"으로 굳혀진 상황이지만, 게임 쪽만큼은 여전히 1회성 구매가 흔합니다. 이건 아무래도 소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이머 문화와도 관련이 없진 않지만, AAA급 게임의 개발 비용이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은 아니라는 판단을 모두가 하고 있고, 이런 상황을 바꾸려는 것이 바로 게임 패스입니다. 거기에 클라우드 게이밍을 통해 엑스박스 콘솔이나 강력한 게임용 PC가 없어도 고사양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이점은 골수 게이머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 매력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이스포츠 리그나 게임 원작으로 한 영상 매체(대표적으로 지금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라스트 오브 어스" 실사 드라마가 좋은 예일 것입니다) 등을 통해 일반인들도 게임 문화를 많이 접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런 일반인들이 게임을 하고 싶어도 위에 얘기한 60만 원에 달하는 콘솔을 사야 한다는 장애물 때문에 접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이런 일반인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면, 클라우드 게이밍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셈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여태까지의 반독점 조사는 "이미 자리를 잡은 시장"을 위주로 진행됐었습니다. 20세기 초의 유명한 반독점 조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 오일 사태나 2000년을 뜨겁게 달궜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라우저 끼워팔기 반독점 조사가 좋은 예입니다. (그러고 보니 또 마이크로소프트네요.) 하지만 영국 CMA의 이번 불허 결정은 아직 형성되고 있는 시장을 겨냥한 것입니다. 이런 양상은 작년에 미국의 공정거래위원회(FTC)가 메타의 위드인(가상현실 운동 게임인 "슈퍼휴먼"의 개발사) 인수를 막으려고 시도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결국 법원이 해당 불허 결정을 기각하면서 메타는 예정대로 위드인을 인수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을까요? 이유는 몇 년 전에 메타가 아직 페이스북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페이스북은 2012년에는 인스타그램, 2014년에는 왓츠앱을 인수했었죠. 당시에도 FTC는 이 두 인수를 조사했지만, 당시에는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 모두 아직 소규모의 앱이라고 판단했기에 (특히 인스타그램은 인수 당시 기준으로는 창업한 지 고작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둘 다 무난하게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보시다시피 페이스북을 소셜 미디어의 거대 공룡으로 키워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결국, 2021년에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분사하라는 골자로 FTC는 다시금 페이스북을 제소했습니다. 이를 둘러싸고 FTC는 페이스북(현재 메타)의 공룡화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상당한 질타를 받아야 했죠.
FTC가 메타의 위드인 인수를 막으려 했던 것도, 그리고 CMA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막으려는 것도 모두 이렇게 나중에 생길 수 있는 독점 상황의 씨를 미리 잘라버리기 위해서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반독점 조사는 지금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독점 상황을 해결한다는 목표입니다. 흡사 앞으로 일어난 범죄를 미리 막는다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요. 그러다 보니 법적 기반이나 사례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미국의 이른바 "빅 테크" 기업들의 영향력에 대한 경각심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들의 정치권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가운데, 이러한 반독점 조사들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단신들
-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 브랜딩의 마우스 및 키보드 판매를 종료한다는 소식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83년에 처음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와 메모장 프로그램을 구매하면 마우스를 끼워주기 시작한 이래로 꾸준히 주변기기를 판매해 왔는데, 이를 40년 만에 종료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완전히 철수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서피스 브랜딩으로 계속 판매한다는 계획이라고 합니다. 다만, 서피스 브랜드 마우스와 키보드는 마이크로소프트 브랜드 대비 가격이 더 높은 편이라서 예전만큼 쉽게 고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고노믹 키보드 라인의 경우 서피스 브랜드가 두 배 가까이 더 비싸다고 합니다.)
- 에픽이 다시 패소했습니다. 그간의 역사를 돌아보자면, 지난 2020년 에픽은 애플 몰래 포트나이트에 애플의 앱 내 구매(IAP)를 우회해서 게임 내 재화를 구매할 방법을 넣었고, 이를 알아챈 애플은 즉각 포트나이트를 앱 스토어에서 제거했습니다. 에픽은 기다렸다는 듯이 애플을 앱 스토어를 통해 플랫폼 독점을 하고 있다며 제소했습니다. 2021년 재판에서 에픽은 iOS 플랫폼에서 써드파티 플랫폼의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해 패소하였지만, 애플 역시 개발자들이 앱 내에서 애플의 IAP 외의 다른 결제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었죠. 이 때 에픽과 애플 둘 다 항소를 했었는데, 그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기존의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iOS에 써드 파티 앱 스토어가 필요하다는 에픽의 주장은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애플은 여전히 IAP 외의 다른 결제 방법을 제공할 수 없다는 앱 스토어 규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애플은 해당 판결을 환영한다면서도 여전히 IAP 강제 규정을 완화하라는 법원의 판결에는 반대하지만, 이후에 어떻게 할지 검토 중이라는 성명을 냈고, 에픽의 CEO인 팀 스위니는 트위터를 통해 "(iOS 앱 스토어는) 여전히 폐쇄돼 있지만, 외부 결제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판결에서는 긍정적인 결과"라며 "다음 절차를 고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 애플이 새로운 watchOS에서 인터페이스의 대대적인 변화를 꾀할 것이라는 루머가 나왔습니다. 역시나 마크 거르만발 루머인데, 그에 따르면 올해 가을에 정식 배포될 watchOS 10은 위젯을 기반으로 한 UI 격변을 이룰 것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초기 watchOS의 UI로 회귀하는 셈인데, 당시에는 "Glances"라 불리는, 각각의 앱에서 정보를 받아와 위젯 형태로 표시해주는 UI 요소가 있었지만 당시의 부족한 애플 워치의 성능 등의 문제로 이후 버전에서 지금의 최근에 열었거나 혹은 사용자가 즐겨찾기로 등록한 앱을 넣어놓는 독으로 완전히 대체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 시도를 다시 하겠다는 것이죠.
애플이 이 시도를 다시 하는 이유는 빠르게 정보를 훑어야 하는 애플 워치 사용 경험(UX)의 특성상 앱들로 정보가 나뉘는 게 불편함을 초래하고, 써드파티 앱들이 그만큼 도외시되는 현상이 생기기 시작해서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이 새로운 UI의 실체는 6월 초에 열리는 WWDC에서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